나는 말이 없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수다스러운 아이는 아니었다. 낯을 많이 가리기 때문에 특히나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는 거의 말이 없어진다.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가 상당히 어른스럽고, 침착하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전혀 아니올시다에 가깝다. 예전에는 그저 낯가림 때문에 말이 없었다면 나이가 들면서는 점점 말에 대한 신뢰가 없어져서 더 말수가 줄어버렸다. 입 밖으로 내뱉어지는 순간 발화되어 버리는 말의 속성상 필연적으로 너무나 가볍고 허황되다. 사람을 대하다 보면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몇 번이나 있다. 그래서 말을 할수록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말의 체계는 너무나 느슨하다. 예를 들면 누군가에게 내가 “어제 길에서 노란 꽃을 봤는데 너무 예쁘더라.” 라고 말하며 그 꽃을 떠올린다고 해도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꽃은 전혀 다른 꽃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어제 오후 세 시 경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길을 걷는데 문득 아파트 담장 사이로 노란색 장미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더라. 물론 완전히 노란색은 아니었고, 연한 노란색부터 개나리색에 걸쳐 제각각의 색들로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란 장미꽃에 가까웠어. 쨍쨍한 햇살 때문인지 대략 백서른네 송이 정도의 노란색 장미들이 반짝반짝 아름답게 빛나 보이더라. 물론 그 중에서 어떤 꽃들은 미처 다 피지 못하거나 시들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아름다웠다는 얘기야. 여기서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나의 판단에 의해서야 나는 장미꽃은 아름답다고 생각하거든. 그렇다고 여성을 볼 때 아름답다고 느끼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심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야. 이 경우에는 조금 더 소박한 느낌이랄까. 최대한 비슷한 느낌을 말하자면 나는 비슷한 기분을 유치원 버스에서 내려서 종종걸음으로 엄마에게 달려가는 아이의 모습에서 느끼는 것 같아. 만약에 네가 장미꽃에 알러지가 있거나, 어떠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하여 노란 장미를 혐오한다면 너에게는 내가 오후 세 시 경의 쨍쨍한 햇살 속에서 봤던 그 대체적으로는 노란 장미꽃들의 모습은 지옥도와 같은 풍경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너무도 아름다웠어. 아직도 내 머리 속에는 윈도우즈xp의 바탕화면처럼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라." 라고 열심히 설명을 한다고 한들 오히려 듣는 사람 입장에선 더 알쏭달쏭해질 뿐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상대하기 상당히 버거운 사람이 되어 버릴 기세다. 말들 사이에 간극은 너무도 헐겁다. 그저 "어제 길에서 노란꽃을 봤는데 너무 예쁘더라"라고 대충 말하고 "응 그래" 라고 대충 넘어가고는 다음날에 다시 "너 어제 그 빨간 장미 본 곳이 어디라고?" 라고 물어보는 식이다. 그래서 말은 하면 할수록 지친다.
  게다가 말은 돌면 돌수록 커져서 결국 돌아와서 복수를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어제 길 가다가 어떤 노인과 어깨를 부딪쳤는데 미처 사과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는 말을 B에게 했다면 한 달 후에 Z쯤 되는 사람에게 "너 얼마 전에 그저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어떤 노인네 뺑소니치고 집에서 숨어 지낸다며?" 라는 말로 돌아오는 식이다.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남아 있는 것은 말들이다. 나는 말에 지쳤다. 얼마나 값싼 미끼인가.'
  이딴 생각들을 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말을 하면서도 나를 못 믿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말을 하면서도 ‘내가 진짜 이렇게 느껴서 이렇게 말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문에 내가 하는 말은 점점 짧아지거나 가벼워진다. 아니면 그저 가벼운 가십이나 농담이 되어 버린다. 사실 모든 말들의 근본적으로는 농담이 아닐까.

by Loooou | 2009/08/10 02:46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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