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것이 있다면

1

 

  문창과에 들어와서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과연 이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글을 쓰고 싶어 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누군가는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소설을 쓰겠다고 왔고, 또 어렸을 때부터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무수히도 받아온 사람도 있었다. 과연 무엇이 이 사람들을 절실하게 만들까. 나는 궁금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냥 정말로 이유가 없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책을 많이 읽는, 음악을 좋아하는 애였을 뿐이다. 내가 지금 나이에도 여전히 글을 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시간이 많았고, 집에서 내가 무엇을 하든 말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문창과에 가고 싶다고 밝혔을 때도,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을 때도 엄마는 그냥 그러라고만 했다.

 

2


  엄마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한다. 사실 이야기라기보다는 드문드문 엄마를 통해 또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들어온 엄마의 전설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전설이다. 엄마는 부산 사람이다. 엄마의 부모님 즉,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이북에서 피난오신 분들이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부산에서 유명한 여고에서 전교 1,2등을 다투던 실력이니 알만하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외할머니는 대단히 극성스러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지금에 와서 외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저 사람이 예전에 엄마에게 공부를 하라고 닦달을 하고, 학교에서 치맛바람을 날렸던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그녀는 나에게는 그저 인자하고 좋은 외할머니일 뿐이다. 예전에는 가끔 외할머니는 나에게 너희 엄마가 모아둔 상장이 있었다면 너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소리를 하곤 했다. 엄마 역시도 공부에 욕심이 많았지만 여기에서부터 엄마와 외할머니의 의견은 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엄마는 서울에서 공부하고 싶었고, 외할머니는 딸내미 혼자 서울에서 공부를 한다는 사실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결국 엄마는 대학교를 시험보기 전에 서울로 가출을 감행했다. 가출이라기보다는 친척집으로 할머니에게 알리지 않고 가는 것이었지만 하여간. 여기에서 외할머니가 엄마의 고집을 꺾었는지 못 꺾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엄마가 대학교 시험을 보기 사흘 전쯤에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이다. 이 사고는 모든 것을 바꾸었다. 엄마는 그 해에 시험을 보지 못했다. 엄마가 언젠가 한 번 지나가듯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내가 속을 한참 썩였을 무렵이었는데. ‘내가 그 때 사고만 당하지 않았어도.’ 맞다. 그 당시에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엄마가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을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버지를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더더욱 나를 낳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엄마는 엄마의 다른 친구들처럼 지금보다 더 좋은 집에서, 지금보다 더 윤택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하여간.
  엄마의 꿈은 정신병원 의사였다고 한다. 정신병원 의사가 꿈인 여고생이라니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여고생인가. 추운 겨울 교통사고 뒤에 병상에 누워서 엄마는 생각했으리라. 만약에 내가 더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면 내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을 시키겠다고. 그리고 어머니는 당신의 다짐대로 우리를 키웠다. 덕분에 나와 내 동생은 정말로 마음대로 컸다. 초등학교를 갓 입학했을 때의 일이었다. 엄마는 그 전까지 나를 동네에서 가장 좋다는 유치원에 보냈었다. 유치원은 대단히 자율적인 분위기였다. 그저 아침에 유치원에 가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 그만이었다. 때문에 학교의 수업이라는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입학을 하고나서도 수업시간을 빼먹고 운동장에서 놀거나, 토끼우리에서 토끼한테 밥을 주던 조금 덜떨어진 학생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일 학년인 시절부터 선생님의 호출을 받았다. 자신의 자식새끼를 걱정하는 선생님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남한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이니 그냥 놔두세요. 곧 적응할 것입니다.’ 덕분에 나는 담임선생님의 묵인 하에 공식적으로 땡땡이를 치는 학생이 되었다. 나는 어릴 때면 으레 다니던 속셈학원도 다니지 않았다. 아니 다니긴 했지만 금방 그만 두겠다고 하자 엄마는 그럼 그러라며 심상하게 말했다. 그렇게 글짓기도 조금, 피아노도 조금 하다가 금방 그만두기 일쑤였다. 그래도 한 번도 엄마는 나를 꾸짖거나 하지 않았다. 아들이 유치원 때부터 그렇게 방황을 하는데도 가만히 놔둔 것을 보면 우리 엄마도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렸을 때 열심히 방황을 한 덕분인지 나의 사춘기는 대단히 미미하게 끝이 났다. 물론 가출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돌아와서도 엄마는 그저 심상하게 넘어갈 뿐이었다.

 

3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강요한 것은 딱 두 가지였다. 도둑질을 하지 말 것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말 것. 결국 모든 자식들은 부모의 뜻을 거스르는 법이다. 나는 거짓말을 업으로 삼아, 남의 경험을 도둑질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4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도리어 엄마가 그렇게 멍석을 깔아줬기에 나는 나이가 들수록 도무지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오랫동안 배워온 컴퓨터도 흥미를 잃었고, 음악을 하고 싶어도 악기를 꾸준히 연습하는 과정이 지난해 보였다. 물론 공부는 정말 하기 싫었으며, 운동은 숨이 차서 싫었다. 도대체 하고 싶은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라면 기껏해야 음악 감상가, 인터넷 서퍼와 같은 결국엔 무위도식자와 다를 것이 없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고3이 되었고, 여름방학이 지났다. 나는 처음으로 대학교 배치표라는 것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쨌든 대학은 가야할 것 같았다. 적어도 대학에 가면 이렇게 현실에 안주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어질 것이 아닌가. 배치표를 보며 처음 든 생각은 ‘대관절 어느 과를 가야한단 말인가’란 생각이었다. 조건은 두 가지였다. 공부를 많이 하지 않고, 뭔가 있어 보이는 과. 그런 조건에 맞고 내가 그나마 도전해볼만한 과는 문예창작과 밖에 없었다. 그제까지 제대로 된 글이라고는 한 번도 써보지 못했지만, 일단 글이라는 것은 그냥 펜과 종이만 있으면 누구라도 쓸 것 아닌가? 게다가 나는 남들보다 (일본)소설도 좀 많이 읽은 편이 아닌가. 그래서 첫 면담에서 나는 담임에게 밑도끝도없이 문창과에 가겠다고 말했다. 글은 좀 쓰냐? 아뇨. 하하. 우리 담임도 조금 이상한 사람인지라 그럼 그러려무나, 라고 인자하게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만큼이나 책임감이 없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그저 어머니들이면 당연하게 품는 아들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내지는 근거 없는 신뢰로 나를 그냥 놔두었다. 오로지 아버지만이 조금 뭐라고 하긴 했으나, 아버지 역시도 기본적으로는 어머니의 교육방침에 그다지 반대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지원한 모든 학교의 실기고사에서 떨어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실기를 보지 않는 학교에 가까스로 입학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어영부영 학교를 다니다말다 하다가 다음해에 지금 다니는 학교에 시험을 봤고, 정말로 이상하게도 합격했다. 나는 지금도 교수들이 나의 악필을 알아보지 못해서 오독을 하고 뽑은 것이 아닐까 깊이 의심하고 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던 이 년간 글쓰기는 나의 놀이였다. 신나게, 겁도 없이 썼다. 못 쓴다는 소릴 들어도 그러려니 했고, 잘 쓴다는 소릴 들으면 되레 의아했다. 그건 소설이기 보다는 내가 하고 싶고, 내가 보고 싶은 이야기였을 뿐이니까. 그렇게 신나게 이 년을 보냈고 졸업을 하자 거짓말처럼 글이 써지지 않았다. 쓰려고 자리에 앉아도 떠오르는 것도 없고, 막상 떠올라도 진행이 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안 것이지만 흔히들 말하는 우물이 말라버린 것이었다. 이 년 동안 줄기차게 퍼다 쓰고 다시 채울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내가 그 때까지 살아온 이십 년이라는 세월은 그렇게나 얕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으니 나는 그저 이제 이 짓거리도 그만할 때가 된 거구나, 생각했다. 졸업 후 공익 생활을 하며 이 년을 허송세월 했고, 다시 취직을 해서 일 년을 넘게 보냈다. 그러던 중에 무엇인가 써보려고 끼적이기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위기감도 없었고, 절실함도 없었다.


5

 

  그러던 것이 슬슬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옛날에 친했던 동생이 죽었다. 그의 죽음은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마치 내 어린 시절이 통째로 도려내진 듯한 기분이었다. 이대로는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 다른 것이 하고 싶었고, 남은 것이 무엇인가 떠올려보니 글쓰기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말할 때도 엄마는 담담했다. 새삼 생각해도 정말 대단한 엄마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진즉에 내가 학사학위라도 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므로 찬성했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돌아왔다.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나의 나쁜 버릇이다. 그렇게 7년을 에둘러서 여기에 서있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절실함을 느꼈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켜켜이 무엇인가가 쌓이는 것이 느껴진다. 결국 내가 지금까지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남들보다 시간이 많았고, 남들보다 더 담대한 엄마를 두었기 때문이다.

 

6

 

  하나하나의 우연들은 결국 시간의 때를 입으며 필연이 되고, 운명이 된다. 엄마가 처녀시절에 대학 시험을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나는 지금 글을 쓸 마음을 품게 될 수 있었다. 어째서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다. 물론 나에게 글을 쓰려고 일어난 일들은 아니지만, 결과가 그렇다.

by Loooou | 2009/10/05 20:07 |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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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toyna at 2009/10/06 23:19
글에서도 자유분방함이 느껴져요.
오래전인데, 루씨의 글이 매력있다고 생각한 것도 그래서였던 거 같아요.
정말 자유롭게 쓰는 건지, 아주 엄격한 룰에 의해 쓰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

현재의 내 상황과 오버랩 되는 글이예요.
극성스런 부모님에게서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으로 일본으로 건너왔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지낸게 3년 반. 인생관이나 삶의 가치가 부모님과 상극을 이루는 저는, 가끔 하는 연락마저 입을 닫거나 의견충돌을 일으킵니다. 떨어져 지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그냥 지켜봐주시면 좋을텐데.
부모님과의 조화를 위해 돌아가서 하라는 대로 해야하는 걸까요. 아님 이대로 내 뜻대로 사는게 옳은 걸까요.
나에게도 결정의 계기, 아직은 알 수 없는 그 어떤 사건은 일어나는 걸까요.


<지난글>
나도 어제가 생일이었어요(올해는 애인을 만나기로 한 10일을 생일로 치기로 했지만).
출근 전, 엄마와의 통화로 기분을 망치고 잠들기 전까지 최악의 날을 보냈습니다.
20대의 끝, 혼돈과 방황의 끝이기를.
Commented by Loooou at 2009/10/08 16:38
저는 실제로는 별로 자유분방한 사람은 아니랍니다.

오히려 붙임성도 없고 사교성은 제로에 가까운 골방형 인간에 가깝다고 할까요... ㄷㄷ

지금에 와서 쓴 소설들을 보신다면 상당히 당혹감을 느끼실지도 몰라요.

저도 긴 세월 동안에 많이많이 변했거든요.

메일 주소 주시면 최근에 쓴 소설 보내드릴께요.

간단한 감상을 얘기해주신다는 전제 하에...

주변에 보여줄 사람이 없어요 orz...
Commented at 2009/10/08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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